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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나 국가에서 선비를 기른 지 100년인데 기력을 내어 적을 토벌하고 국권을 회복함을 의(義)로 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내 나이 80에 가까우니 신하의 직분을 다할 따름이요, 죽고 사는 문제는 깊이 생각할 것이 아니다."



1906년 호남의병을 이끈 면암 최익현. 초상화의 대가 채용신이 1905년에 그린 것으로 보물로 지정 든든학자금 생활비대출 한도 돼 있다. 자료=국가유산청


면암 최익현이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항일의병을 일으킬 때 한 말이다. 선비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적을 토벌할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구한말 대한제국 시기 일제에 대항하여 3차례 의병이 일어났다. 1895년 을미의병은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1905년 을사의 9급공무원 대출 병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것에, 1907년 정미의병은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 해산에 발발하여 봉기했다. 초기 의병은 대개 명망 있는 유림이 주도했고, 나중에는 대한제국 군인과 농민도 합세했다.
유림의 의병투쟁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면암 최익현이다. 그는 주자학 외에 모든 학문은 배격하는 위정척사의 입장에서 통치체제와 질서 러시앤캐쉬 를 유지하려 했고, 평생 그런 자세로 살았다. 자신의 사상을 결단과 행동으로 보여줬고, 그의 언행은 외세의 침탈에 가로놓인 당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면암은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고, 14세 때부터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 한학을 배웠다. 이항로는 정조-고종 시대 성리학자로 존화양이와 춘추대의에 충실했으며 그의 사상은 조 청년 선말 위정척사론으로 계승됐다.



면암 최익현의 위패를 모신 청양의 모덕사.


면암은 23세 때 명경과에 급제해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신창현감 등을 지냈다. 강직하고 결기가 있었던 면암은 역사의 고비 때마다 강력한 상 광주신용회복 소를 올려 온 나라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 왕실 종친의 정사 간여 비판, 대원군 하야
면암은 청년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조정에 수많은 상소를 올렸다. 1868년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토목공사와 원납전과 당백전 등 4가지 폐지를 주장했다. 청나라 화폐인 청전 폐지, 대원군이 철폐했던 서원과 명나라 황제 만력제를 모신 만동묘(사당) 복구 등을 요구했다. 대부분이 고종의 아버지인 대원군 이하응의 정책을 정면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면암은 특히 왕실의 종친들이 정사에 간여하는 것을 비판했고, 이게 도화선이 돼 대원군이 물러나며 고종의 친정체제가 확립됐다. 면암은 이 일로 제주도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자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대를 표명한다. 임금의 행차 앞에 엎드려 도끼를 든 채 조약 파기를 주장한 것이다.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도끼로 내 목을 치라는 뜻이었다. 면암은 이 사건 때문에 흑산도 유배에 처해졌다. 상소의 내용은 일본이 파는 것은 사치품이나 노리개인데 반해 우리가 파는 것은 생필품이라 민생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왜인은 서양인과 다름없는 도적이라는 것이었다.
1895년 을미개혁 때는 단발령에 강하게 반발했다. 고종과 태자가 상투를 잘랐고, 개화파가 유림의 거두인 면암을 잡아 가둔 뒤 상투를 자르려 하자 그는 "내 머리를 자를 수는 있지만, 머리털 만은 자를 수 없다"며 거부했다. 명성황후 시해로 민심이 흉흉했던 터에 최익현의 행동은 반일감정에 불을 붙여 을미의병이 일어나는 단초를 제공했다.



최익현의 영정을 모신 모덕사 경내의 영당. 현판에 '성충대의(聖忠大義)'라고 씌여있다.





청양군 목면 모덕사 경내의 면암 최익현 동상.


면암은 고종이 호조판서, 각부군선유대원, 경기도관찰사 등의 벼슬을 내렸으나 부임하지 않거나 금방 사퇴했다. 부정부패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일본을 배격하는 상소문을 올리곤 했다.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00년 68세가 되던 해 경기도 포천을 떠나 충남 정산으로 이사했다. 어지러운 시대 산속에 은둔하여 경서를 읽고 부모를 모시며, 농사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호서의 이용원, 윤석봉 김복한 등의 선비와 인연을 맺었다.
□ 순창 곡성 등 장악, 동포끼리 살상 우려 의병 해산
정산에 살던 면암은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늑약을 맺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청토오적소'라는 글을 올렸다. 박제순 이완용 등 역적 5명의 목을 베고 조약을 파기하라는 내용이었다.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의병을 일으킨다. 호남의 임병찬 고석진 최재학 등과 연락을 취한 뒤 1906년 2월 가묘에 인사를 올리고 호남으로 출발했다. 이에 앞서 면암은 예산의 곽한일과 남규진에게 호서의 의병(홍주의병)을 돕도록 했고, 제천·충주 의병을 이끈 유인석과는 남북이 힘을 모아 왜적을 토벌하자고 당부했다.
당대의 큰 인물 면암이 일제 토벌의 깃발을 들자 호남에서 수많은 유생과 농민들이 동참했다. 4월 정읍의 무성서원에서 궐기를 위한 강회를 열고 태인읍으로 들어가니 군수 손종호는 도망하고 없었다. 다음날 정읍으로 진군하니 군수 송종면이 의병을 맞이했다. 면암의 의병은 내장사-구암사-순창-곡성-중진원을 쉽게 장악한 뒤 남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남원은 관군의 수비가 견고해 순창으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면암의 의병에 맞서 전주 관찰사 한진창과 순창군수 이건용이 관군을 이끌고 나왔고, 순창군수가 찾아와 설득했으나 거절했다. 전남관찰사 이도재가 의병을 해산하라는 황제의 칙지를 전해오자, 면암은 황제에게 의병을 일으킨 이유를 적어 보냈으니 간여하지 말라고 회신했다.



1906년 호남의병장 면암 최익현이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는 모습. 당시 대전 인근에서 일본 순경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암의 의병은 다시 남원 진입을 꾀했다. 그러나 남원의 관군은 일본군이 아니고 전주와 남원의 진위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면암은 고심 끝에 동포끼리 싸우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해산명령을 내렸다. 의병은 모두 흩어졌고, 면암은 끝까지 남았던 유생 12명과 함께 체포됐다. 면암을 비롯하여 임병찬 고석진 등의 유생은 서울로 압송됐다. 일제는 면암에게 3년, 임병찬은 2년형을 내리고 일본 대마도로 유배를 보냈다. 면암은 대마도에서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유배된 이식 남경천, 우준근 등 9명의 의사를 만나기도 한다.
면암은 유배 시절 일본 경비대장이 예를 갖추라고 핍박하자 단식으로 맞섰다, 일본측이 사과하자 단식을 중단했지만 74세의 나이와 의병생활, 유배, 단식 등의 고통이 쌓여 1907년 1월 1일(음력 1906년 11월 17일) 세상을 뜬다.
□ 대마도 감옥서 사망, 온나라 백성과 유생들 통곡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 위치한 최익현의 묘소


면암의 유해가 부산에 도착하자 수많은 유생과 시민들이 몰려들어 통곡을 하며 운구를 붙잡았다. 하도 사람이 몰려 운구가 하루에 10밖에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면암의 유해는 김천에서 열차로 운구돼 충남 논산의 노성 무동산에 안장됐다. 얼마 뒤 면암의 유해는 충남 예산 광시면으로 옮겨졌다.
면암 최익현은 조선말-일제강점기 오로지 공자와 맹자를 숭상하는 주자학자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신분제도 타파, 독립협회, 애국계몽운동, 민본주의, 개방 등을 반대했다며 그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절 개방과 개혁을 통한 근대화와 제국주의 침략 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명확하게 인식한 채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한 인물은 많지 않다. 조선조 500년 기득권을 누렸던 유림의 상당수가 변절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무기력하게 사라져갔다. 그러나 면암은 뼈에 성리학을 새긴 선비로서 부정부패와 무능, 불의에 결연히 나섰고, 목숨을 걸고 항일투쟁을 벌이는 등 실천하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줬다.
"신의 나이 지금 74세이오니 죽어도 무엇이 애석하겠습니까. 다만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고, 원수를 섬멸하지 못하고,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강토를 환수하지 못해서…… 신이 비록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면암이 대마도에서 죽음을 무릅쓴 단식을 앞두고 왕에게 올린 글이다. 의(義)를 따르기 위해 일본이 제공하는 한 수저의 밥,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고 몸을 깨끗이 하여 왕에게 바치겠다고 밝혔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 면암은 그렇게 살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