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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진남웅 조회 1회 댓글 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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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전, 산이 좋은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도봉산 선인봉 은벽코스 아래에 한 달 동안 텐트를 치고 살면서 등하교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산이 좋았다. 대통령기 등산대회에 출전해서 초대 대한산악연맹 회장을 맡았던 이숭녕 박사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박사는 이 꿈나무 알피니스트가 훗날 자신의 뒤를 이어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는 바쁜 사업으로 인해 잠시 산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인생의 절정기에 접어들 무렵, 덜컥 암에 걸렸다. 심지어 말기, 긴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치료제를 계속 찾다가 마지막으로 산을 찾았다. 관악산 아래로 집을 옮기고 산책을 다녔다.
10년 만에 산은 새 목숨을 줬다. 그는 기적적으로 협조융자 완치됐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산이 살려준 목숨을 산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었다. 그때 마침 '대한산악연맹 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대산련은 꿈의 조직이다.
그래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고, 두려움도 있어 망설여졌다. 하지만 근본을 생각했다. 스스로 물었다. '나는 산을 좋아 하는가?' 개인회생 햇살론 좋아한다. 망설임이 사라졌다. 출마했다. 그렇게 지난 1월 7일 제22대 대한산악연맹 회장으로 조좌진 DYPNF 회장이 당선됐다. 경복고 산악부 출신이며, 산악계 활동 이력으로는 지난 2022년 경복고 개교 100주년 기념 네팔 푸캉PhuKang(6,694m) 원정을 단장으로서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원정대는 세계 초등에 성공했다.
이자율 높은 은행 임기는 2025년 1월 23일 정기총회부터 시작해 2029년 정기총회 전일까지 4년. 조 회장은 취임일성으로 "대한산악연맹과 시도연맹, 산하단체가 합심하고 소통해 여러 가지 현안 과제들을 해결하고 대한산악연맹이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 회장과의 일문일답.
개인사업자대출문의 조 회장은 2022년 푸캉 원정대를 단장으로서 이끌고 초등에 성공했다.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산련에서 먼저 제안이 왔었어요. 일종의 인재영입이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산을 좋아하고 계속 다니고 있던 터라 저로선 너무 끌리는 제안이었죠. 어릴 때 동경 매매 잔금 하던 대산련의 회장을 맡게 된다니 감개무량이죠.
하지만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특히 대산련은 여러모로 조직의 개성이 강한 특징이 있거든요. 또 구성원들도 하나하나 외골수에 개성이 강한 사람들 천지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엄홍길 대장을 비롯해 많은 산악계 분들이 지지해 주겠다고 나서줘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출마 과정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구체적으로 들은 것은 없습니다. 단독 입후보 출마였기 때문에 선거운영위원회에서 회장 후보자 결격 사유 회의를 하고, 이후 추대하는 형식으로 했기 때문에 별도 투표 과정은 없었습니다. "
경복고 산악부 출신입니다. 당시 활동을 열심히 하셨나요?
"제가 원래 시골 출신입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서울 유학을 보내준 건데 공부는 안 하고 산에만 가서 집에서 혼도 많이 나고 그랬어요. (웃음) 그래도 산으로 갔죠. 선인봉 은벽코스 아래 한 달 동안 텐트 치고 학교를 다닌 적도 있어요. 새벽에 일어나 하산해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거죠. 또 하교할 땐 친구들을 하나씩 데리고 와서 암벽등반을 했죠. 선인봉에 있는 모든 등반 코스는 전부 완등한 셈이고, 인수봉도 몇 개 빼고 어지간한 코스들은 다 등반한 바 있습니다. 그때는 하켄 박으며 등반하던 시절이라 짐도 많고 배낭이 무척 무거웠어요. 텐트 하나가 20kg이던 그런 시절이죠."
조 회장은 2022년 푸캉 원정대를 단장으로서 이끌고 초등에 성공했다.
어떻게 현 회사DYPNF를 창업하게 된 건가요?
"20대 중반까지는 산에 미쳐서 살았어요. 하지만 계속 산만 갈 수는 없었죠. 그래서 생각하다가 29세에 돈을 벌고자 사업을 시작했어요. DYPNF는 산업플랜트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석유화학공장이나 발전소를 건설할 때 필요한 설비들을 제공하는 회사예요. 세계 3대 메이커입니다. 다른 두 브랜드는 독일에 있어요.
이렇게까지 회사가 성장하는 데 한 20년 걸렸습니다. 회사 성장에 등산도 한 몫 했죠. 전 직원들과 단합대회로 오대산~하조대 종주를 했었거든요. 일종의 극기 훈련이죠. 제가 솔선수범해야 하니 등산이 낯선 직원은 직접 부축도 해주면서 같이 걸었어요. 그게 좋은 조직문화를 형성해 줬어요. 서로 몰랐던 직원들도 말을 트게 되고, 서로 믿고 의지하게 됐죠.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은 안 합니다.
처음엔 몇 백 만 원짜리 부품을 수주 받아서 만들어 파는 걸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전자조립라인, 자동창고 같은 것도 만들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 회장은 2022년 푸캉 원정대를 단장으로서 이끌고 초등에 성공했다.
프로필을 보면 2013년까지 회사 대표이사를 맡다가 도중에 공백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 다시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으로 나오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팠습니다. 췌장암 말기였죠. 투병생활을 10년 했습니다. 수술이 잘 안 됐는데 운 좋게 살아났어요. 원래 산을 좋아하니 치유를 위해 관악산 아래로 이사 가서 매일 오르내렸어요. 그렇게 10년이 지나니 낫더라고요. 관악산이 고쳐준 셈이죠. 산이 제2의 삶을 줬습니다."
완쾌한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요?
"아플 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봤었어요. 그중 가장 첫 번째가 히말라야 가기였습니다. 그래서 낫자마자 바로 히말라야를 가자고 결심했죠. 공교롭게도 그때 경복고등학교 100주년 기념식을 준비할 때였어요. 기념회에서 후배들하고 같이 히말라야를 한 번 가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또 이왕 갈 거면 미등봉을 초등해 보자는 얘기가 나왔죠. 그렇게 성사된 것이 푸캉 원정입니다. 김미곤 대장을 영입해 경복고 후배들을 이끌고 갔어요.
그렇게 산에 가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어요.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었죠. 앞서 김 대장과 대원들의 등반을 보니 피가 끓더라고요. 산을 좋아했던 젊을 적 제 자신이 다시 떠올랐어요."
그렇게 산을 좇다 보니 한국 최고 산악단체의 정점의 자리까지 오르게 됐습니다. 올라보니 어떤가요? 산악계는 어떤 상황인 것 같습니까?
"고산등반을 비롯한 전문등반이 고령화됐고, 주춤하는 추세입니다.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거죠. 예전에는 연맹이나 지역, 회사별로 대규모 원정대를 꾸리곤 했는데 이젠 삼삼오오 모여 개별 원정대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대에 맞는 전문 등반 영역에 대한 사업과 지원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산련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변하고 있죠. 전문 등반은 쇠퇴하고 대신 스포츠클라이밍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청소년 산악인 발굴, 문체부 지원사업인 '오르락내리락'과 같은 대국민 등산·산악스포츠 교육을 더 활발히 전개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전문 등반을 소홀히 하진 않을 겁니다. 그게 곧 대산련의 정체성이자 정통성이거든요."
당면과제는 무엇인가요?
"구체적으로는 올해 9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IFSC 세계클라이밍 대회를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8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하는 최고 권위의 클라이밍 대회입니다.
그 다음으론 대산련 숙원사업인 K-클라이밍센터 설립이 있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정책현안과제로 관련 연구보고를 했고, 곧 보고서가 나옵니다. 이를 토대로 올림픽공원 내에 선수들은 전문적으로 훈련하고, 동호인들도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2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암장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열악한 훈련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겁니다. 또 올해부터 국가대표-후보선수-청소년 국가대표-꿈나무 선수로 이어지는 선수 육성 프로그램이 완성됩니다. 좀더 많은 선수들이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지원받으며 운동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임 회장으로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까?
"먼저 재정입니다. 앞서 소개한 다양한 사업들을 수행하려면 재정이 충분해야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 등과 긴밀히 소통해 예산을 지원받고, 신규 후원사를 발굴해야 하죠. 또 연맹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도 고민 중입니다. 확보한 재원도 효율적으로 잘 써야겠죠.
두 번째는 인적쇄신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연맹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기획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젊은 인재들이 연맹에서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더욱 성숙한 인재로 거듭나고 이들이 우리 산악계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대한산악연맹이 나아갈 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조 회장.
취임 후 첫 신규사업이 시도연맹 상생 및 행정보조비 지원입니다. 이건 무엇인가요?
"대산련은 중앙연맹이 중심이 아닙니다. 각 시도연맹과 산하단체들이 근간이고 근본이죠. 이들이 잘되어야 대산련도 발전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열악합니다. 시도연맹 사무처엔 상근 직원이 없는 곳도 많습니다. 지역연맹 차원에서 무슨 사업이나 행사를 해보려고 해도 행정력이 부족할 때가 많죠. 그래서 이들을 정상화하기 위한 지원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그냥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 연수, 간담회 등 역량 강화를 위한 자리도 마련하려고 합니다."
산은 무엇인가요?
"산은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장소입니다. 자유로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언제든 무엇이든 품어 주는 장소입니다. 또 많죠.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레저스포츠이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대산련이 구심점이 돼 좋은 등산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산을 즐겁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드는 대산련이 되어야 하죠. 달라진 시대를 연결하는 것이 그 첫 단추죠.
무슨 이야기냐면, 가령 저희 세대는 산에 대한 의식이 알피니즘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반면 지금 젊은 사람들의 목적의식은 조금 더 스포츠화돼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스포츠화된 클라이밍과 알피니즘의 클라이밍은 다르죠.
둘 중 어느 것이 정답이란 말이 아닙니다. 둘 다 정답이고, 이 정답을 잘 연결하면 더 나은 정답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가령 '암벽 3종 경기'라고 해서 실내암벽대회와 자연암벽대회를 연계해서 여는 것도 재밌지 않겠어요?"
임기를 마친 뒤 사람들이 어떤 회장이었다고 기억해 주셨으면 하나요?
"대산련과 산악계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회장으로 남고 싶습니다. 여러 장애물은 그 옛날 선인봉에서 추락을 거듭하면서도 꼭대기를 향해 등반했던 도전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합니다. 대산련의 미래 기틀을 마련한 회장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좌진 회장
학력
1980 경복고등학교 졸업
2014 경희대 경영학 학사
2017 경희대 경영학 석사
2018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명예특임교수
경력
1996~2013 동양피엔에프 주식회사 대표이사
2011~2017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13~2015 국민생활체육전국라켓볼연합회 회장
2019~ DYPNF 주식회사 대표이사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바쁜 사업으로 인해 잠시 산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인생의 절정기에 접어들 무렵, 덜컥 암에 걸렸다. 심지어 말기, 긴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치료제를 계속 찾다가 마지막으로 산을 찾았다. 관악산 아래로 집을 옮기고 산책을 다녔다.
10년 만에 산은 새 목숨을 줬다. 그는 기적적으로 협조융자 완치됐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산이 살려준 목숨을 산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었다. 그때 마침 '대한산악연맹 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대산련은 꿈의 조직이다.
그래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고, 두려움도 있어 망설여졌다. 하지만 근본을 생각했다. 스스로 물었다. '나는 산을 좋아 하는가?' 개인회생 햇살론 좋아한다. 망설임이 사라졌다. 출마했다. 그렇게 지난 1월 7일 제22대 대한산악연맹 회장으로 조좌진 DYPNF 회장이 당선됐다. 경복고 산악부 출신이며, 산악계 활동 이력으로는 지난 2022년 경복고 개교 100주년 기념 네팔 푸캉PhuKang(6,694m) 원정을 단장으로서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원정대는 세계 초등에 성공했다.
이자율 높은 은행 임기는 2025년 1월 23일 정기총회부터 시작해 2029년 정기총회 전일까지 4년. 조 회장은 취임일성으로 "대한산악연맹과 시도연맹, 산하단체가 합심하고 소통해 여러 가지 현안 과제들을 해결하고 대한산악연맹이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 회장과의 일문일답.
개인사업자대출문의 조 회장은 2022년 푸캉 원정대를 단장으로서 이끌고 초등에 성공했다.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산련에서 먼저 제안이 왔었어요. 일종의 인재영입이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산을 좋아하고 계속 다니고 있던 터라 저로선 너무 끌리는 제안이었죠. 어릴 때 동경 매매 잔금 하던 대산련의 회장을 맡게 된다니 감개무량이죠.
하지만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특히 대산련은 여러모로 조직의 개성이 강한 특징이 있거든요. 또 구성원들도 하나하나 외골수에 개성이 강한 사람들 천지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엄홍길 대장을 비롯해 많은 산악계 분들이 지지해 주겠다고 나서줘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출마 과정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구체적으로 들은 것은 없습니다. 단독 입후보 출마였기 때문에 선거운영위원회에서 회장 후보자 결격 사유 회의를 하고, 이후 추대하는 형식으로 했기 때문에 별도 투표 과정은 없었습니다. "
경복고 산악부 출신입니다. 당시 활동을 열심히 하셨나요?
"제가 원래 시골 출신입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서울 유학을 보내준 건데 공부는 안 하고 산에만 가서 집에서 혼도 많이 나고 그랬어요. (웃음) 그래도 산으로 갔죠. 선인봉 은벽코스 아래 한 달 동안 텐트 치고 학교를 다닌 적도 있어요. 새벽에 일어나 하산해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거죠. 또 하교할 땐 친구들을 하나씩 데리고 와서 암벽등반을 했죠. 선인봉에 있는 모든 등반 코스는 전부 완등한 셈이고, 인수봉도 몇 개 빼고 어지간한 코스들은 다 등반한 바 있습니다. 그때는 하켄 박으며 등반하던 시절이라 짐도 많고 배낭이 무척 무거웠어요. 텐트 하나가 20kg이던 그런 시절이죠."
조 회장은 2022년 푸캉 원정대를 단장으로서 이끌고 초등에 성공했다.
어떻게 현 회사DYPNF를 창업하게 된 건가요?
"20대 중반까지는 산에 미쳐서 살았어요. 하지만 계속 산만 갈 수는 없었죠. 그래서 생각하다가 29세에 돈을 벌고자 사업을 시작했어요. DYPNF는 산업플랜트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석유화학공장이나 발전소를 건설할 때 필요한 설비들을 제공하는 회사예요. 세계 3대 메이커입니다. 다른 두 브랜드는 독일에 있어요.
이렇게까지 회사가 성장하는 데 한 20년 걸렸습니다. 회사 성장에 등산도 한 몫 했죠. 전 직원들과 단합대회로 오대산~하조대 종주를 했었거든요. 일종의 극기 훈련이죠. 제가 솔선수범해야 하니 등산이 낯선 직원은 직접 부축도 해주면서 같이 걸었어요. 그게 좋은 조직문화를 형성해 줬어요. 서로 몰랐던 직원들도 말을 트게 되고, 서로 믿고 의지하게 됐죠.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은 안 합니다.
처음엔 몇 백 만 원짜리 부품을 수주 받아서 만들어 파는 걸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전자조립라인, 자동창고 같은 것도 만들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 회장은 2022년 푸캉 원정대를 단장으로서 이끌고 초등에 성공했다.
프로필을 보면 2013년까지 회사 대표이사를 맡다가 도중에 공백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 다시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으로 나오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팠습니다. 췌장암 말기였죠. 투병생활을 10년 했습니다. 수술이 잘 안 됐는데 운 좋게 살아났어요. 원래 산을 좋아하니 치유를 위해 관악산 아래로 이사 가서 매일 오르내렸어요. 그렇게 10년이 지나니 낫더라고요. 관악산이 고쳐준 셈이죠. 산이 제2의 삶을 줬습니다."
완쾌한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요?
"아플 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봤었어요. 그중 가장 첫 번째가 히말라야 가기였습니다. 그래서 낫자마자 바로 히말라야를 가자고 결심했죠. 공교롭게도 그때 경복고등학교 100주년 기념식을 준비할 때였어요. 기념회에서 후배들하고 같이 히말라야를 한 번 가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또 이왕 갈 거면 미등봉을 초등해 보자는 얘기가 나왔죠. 그렇게 성사된 것이 푸캉 원정입니다. 김미곤 대장을 영입해 경복고 후배들을 이끌고 갔어요.
그렇게 산에 가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어요.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었죠. 앞서 김 대장과 대원들의 등반을 보니 피가 끓더라고요. 산을 좋아했던 젊을 적 제 자신이 다시 떠올랐어요."
그렇게 산을 좇다 보니 한국 최고 산악단체의 정점의 자리까지 오르게 됐습니다. 올라보니 어떤가요? 산악계는 어떤 상황인 것 같습니까?
"고산등반을 비롯한 전문등반이 고령화됐고, 주춤하는 추세입니다.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거죠. 예전에는 연맹이나 지역, 회사별로 대규모 원정대를 꾸리곤 했는데 이젠 삼삼오오 모여 개별 원정대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대에 맞는 전문 등반 영역에 대한 사업과 지원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산련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변하고 있죠. 전문 등반은 쇠퇴하고 대신 스포츠클라이밍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청소년 산악인 발굴, 문체부 지원사업인 '오르락내리락'과 같은 대국민 등산·산악스포츠 교육을 더 활발히 전개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전문 등반을 소홀히 하진 않을 겁니다. 그게 곧 대산련의 정체성이자 정통성이거든요."
당면과제는 무엇인가요?
"구체적으로는 올해 9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IFSC 세계클라이밍 대회를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8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하는 최고 권위의 클라이밍 대회입니다.
그 다음으론 대산련 숙원사업인 K-클라이밍센터 설립이 있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정책현안과제로 관련 연구보고를 했고, 곧 보고서가 나옵니다. 이를 토대로 올림픽공원 내에 선수들은 전문적으로 훈련하고, 동호인들도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2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암장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열악한 훈련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겁니다. 또 올해부터 국가대표-후보선수-청소년 국가대표-꿈나무 선수로 이어지는 선수 육성 프로그램이 완성됩니다. 좀더 많은 선수들이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지원받으며 운동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임 회장으로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까?
"먼저 재정입니다. 앞서 소개한 다양한 사업들을 수행하려면 재정이 충분해야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 등과 긴밀히 소통해 예산을 지원받고, 신규 후원사를 발굴해야 하죠. 또 연맹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도 고민 중입니다. 확보한 재원도 효율적으로 잘 써야겠죠.
두 번째는 인적쇄신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연맹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기획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젊은 인재들이 연맹에서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더욱 성숙한 인재로 거듭나고 이들이 우리 산악계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대한산악연맹이 나아갈 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조 회장.
취임 후 첫 신규사업이 시도연맹 상생 및 행정보조비 지원입니다. 이건 무엇인가요?
"대산련은 중앙연맹이 중심이 아닙니다. 각 시도연맹과 산하단체들이 근간이고 근본이죠. 이들이 잘되어야 대산련도 발전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열악합니다. 시도연맹 사무처엔 상근 직원이 없는 곳도 많습니다. 지역연맹 차원에서 무슨 사업이나 행사를 해보려고 해도 행정력이 부족할 때가 많죠. 그래서 이들을 정상화하기 위한 지원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그냥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 연수, 간담회 등 역량 강화를 위한 자리도 마련하려고 합니다."
산은 무엇인가요?
"산은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장소입니다. 자유로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언제든 무엇이든 품어 주는 장소입니다. 또 많죠.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레저스포츠이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대산련이 구심점이 돼 좋은 등산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산을 즐겁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드는 대산련이 되어야 하죠. 달라진 시대를 연결하는 것이 그 첫 단추죠.
무슨 이야기냐면, 가령 저희 세대는 산에 대한 의식이 알피니즘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반면 지금 젊은 사람들의 목적의식은 조금 더 스포츠화돼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스포츠화된 클라이밍과 알피니즘의 클라이밍은 다르죠.
둘 중 어느 것이 정답이란 말이 아닙니다. 둘 다 정답이고, 이 정답을 잘 연결하면 더 나은 정답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가령 '암벽 3종 경기'라고 해서 실내암벽대회와 자연암벽대회를 연계해서 여는 것도 재밌지 않겠어요?"
임기를 마친 뒤 사람들이 어떤 회장이었다고 기억해 주셨으면 하나요?
"대산련과 산악계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회장으로 남고 싶습니다. 여러 장애물은 그 옛날 선인봉에서 추락을 거듭하면서도 꼭대기를 향해 등반했던 도전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합니다. 대산련의 미래 기틀을 마련한 회장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좌진 회장
학력
1980 경복고등학교 졸업
2014 경희대 경영학 학사
2017 경희대 경영학 석사
2018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명예특임교수
경력
1996~2013 동양피엔에프 주식회사 대표이사
2011~2017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13~2015 국민생활체육전국라켓볼연합회 회장
2019~ DYPNF 주식회사 대표이사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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