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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해다인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04-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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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재단이 한국 최초로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을 세운 것도, 단단한 의지로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장애인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나눔을 실천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대표가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 지난 2023년 12월 6일 개인회생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23조 원의 분식회계, 10조 원의 불법 사기대출'. IMF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1999년 국내 최대 회계 부정 사건이 우리 운전학원강사 사회를 강타했다. 주인공은 대우그룹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삼성, 현대, LG 등 다른 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대우는 위기가 기회라며 오히려 빚을 내 공격 경영에 나섰다. 하지만 천문학적 회계 부정 사건이 터지면서 대우의 허상과 김우중 회장의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재 일본자동차 계 2위의 대우그룹은 해체됐고 김우중 회장은 몰락했다.

대우그룹의 맏형격인 대우전자의 주식을 샀다가 피해를 본 사람이 10만 명을 넘었다. 이 중 360명이 끝까지 남아 김우중 회장과 대우 임원, 분식회계를 눈감아준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개미들의 집단소송이었다. 주도한 곳은 법무법인 한누리. 부모님 선물 디어메드 작은 법률회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회계법인과 대형 로펌을 상대로 한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비유됐다.
예상을 깨고 한누리가 8년 동안의 소송 끝에 승리하면서 분식회계에 대한 손해배상의 기준이 마련됐다. 언론은 일제히 이 사건을 '소액주주운동의 효시'라고 소개했다. 그 중심에는 김주영 대표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현대증권 소송과 주택담보대출금리비교 현대투자신탁증권 소송, LG그룹의 주주대표 소송 등에서 잇따라 승소하면서 '대기업의 저승사자', '집단소송 전문 변호사'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대우전자 소송은 지옥과 천국을 오간 싸움이었습니다. 대우뿐 아니라 부실 감사를 했던 안진회계법인에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습니다. 심리 후 안진을 대리하는 변호사와 마주쳤습니다. 그는 미소 지으며 '그러기에 왜 우리를 건드렸느냐'고 말하더군요. 소송에서 안진회계법인을 빼라고 권유하던 분이었습니다. 경기고·서울대(KS)를 졸업한 고위 법관 출신인 그 변호사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재판이 뒤집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패소가 두려웠던 김주영 변호사는 역시 KS 출신으로 몇 개월 전 퇴임한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를 찾아갔다. 사건을 맡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즉답을 피한 채 생각해 보겠다고만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정의를 세워보자고 시민운동에 참여했는데 막상 어려운 상황에 빠지니 '전관예우'에 의존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날 저녁 한 모임에서 이런 사실을 고백하자, '악인의 꾀를 쫓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곧바로 소송을 부탁했던 변호사를 찾아가 사과하고 선임을 철회했다. 이 경험은 그가 부딪히게 된 많은 소송에서 오직 '실력'과 '양심'으로 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줬다.



▲ 왼쪽부터 김주영 변호사, 아버지 김상원 변호사, 형 김주현 변호사. ⓒ김주영



그의 곁에는 삶의 스승이 되어준 아버지 김상원 변호사와 형 김주현 변호사가 있었다. 대법관 출신 김상원 변호사로부터 법조인의 안목과 자세를 배웠고, 몇 년 앞서 서초동에 사무실을 연 김주현 변호사는 동생이 투자자소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김상원 판사는 어땠을까. "아버지는 경기도 이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농고와 농대를 졸업하셨습니다.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 양과에 합격하신 뒤 오랫동안 판사로 봉직하셨습니다. 이마에 '근검절약, 성실'이라는 말을 붙여놓은 것처럼 빈틈없이 생활하셨지요. 어린 시절 합정동의 작은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등 대가족이 어울려 살았습니다. 귀가하시면 꼿꼿하게 양반다리 책상에 앉아 글을 쓰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김상원 판사는 1981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소위 국가관이 투철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임용 탈락 소식에 어머니가 충격을 받으셨지만 아버지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변호사 생활을 하시며 환경운동, 문화유산운동, 가나안 농군학교 지원 등 다양한 사회활동에 힘쓰셨습니다."
김상원 판사는 1976년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한 대학생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에 무죄를 선고했고 1978년 일조권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등 시민과 약자를 위한 판결을 많이 했다.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김주영 변호사는 대기업에 맞서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를 대변하는 변호사가 됐다. "부모님은 법대에 가라든가, 법조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신군부에 의해 모든 것이 억압받는 상황이었지요. 그때 사회 선생님께서 '정치가 바로 서야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며 '정치해 볼 사람 손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갑자기 정의감과 공명심이 솟구쳐 손을 번쩍 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정치를 하려면 법대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대를 간 김주영 변호사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까지 기성 정치권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총선 때마다 '젊은 피'를 수혈하려는 정치권으로부터 여러 차례 러브콜을 받았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



▲ 김주영 변호사 어릴 때 및 고교 시절(오른쪽에서 두 번째) 모습. ⓒ김주영



1980년대는 12‧12쿠데타로 등장한 신군부에 맞서 시민과 학생이 조직적으로 저항한 현대사의 격동기였다. 대학에서는 대학생과 사복경찰인 백골단의 충돌이 매일 빚어졌다. "강남에서 넉넉하게 자랐으니 저도 금수저일 겁니다. 대학 입학 후 사회 문제에 눈뜨면서 이념서클에 가입해 봤는데 여러 면에서 제 생각과 다르더군요. 무엇보다 사법고시 자체를 좋게 보지 않아 결국 나오고 말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큰 고민 없이 사시 준비에만 전념하는 소위 '밥대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3학년 때 1차 시험에 합격하고, 4학년 때 2차 시험에 합격하는 모범 코스를 밟았다. 그렇다고 꼭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지혜는 모르는 것 앞에 겸손하듯, 우선 법률적인 실력을 갖추자는 생각뿐이었다.

인생은 늘 우연한 기회에 전기를 맞는다. 군법무관 시절 상관의 배려로 대학원에 다니게 됐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2017년 1월 13일 작고. 김영삼 정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17대 국회의원 역임)로부터 '법경제학'을 들으며 인생 진로를 찾았다. "사회정의나 경제적 평등의 문제를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통계수치를 통해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에 매료됐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법원의 딱딱한 분위기와 검찰의 권위적인 분위기에 실망한 것도 판검사를 포기한 이유였다.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고 싶었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가 법원 대신 로펌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그의 선택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줬다.
'김앤장'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특출한 선배가 많았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외국기업의 합작투자와 국내기업의 법률 자문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대학원에서 법경제학을 접하며 관심을 가졌던 공정거래법과 회사법 업무의 전문성도 쌓을 수 있었다. 대학원 시절 소개로 만난,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과 이 무렵 결혼했다. 김앤장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신혼이었지만 저녁도, 주말도, 낮과 밤도 없는 삶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에 지원한 그는 장학생으로 선발돼 2년간 미국 시카고대에서 로스쿨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뒤 LA에 있는 로펌 'Williams & Woolley'에서 법률시장의 실무연수를 받으면서 증권 및 금융관련 피해소송 전문 변호사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유학 시절 또 하나의 계기가 찾아왔다. 시카고에서 열린 미주유학생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손봉호 서울대 교수의 특강을 들은 것.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사명이라는 손봉호 교수의 연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유학을 마치면서 그는 손 교수에게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편지를 썼다.
귀국한 김주영 변호사는 손 교수가 설립한 '밀알복지재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때마침 그곳에서 추진하던 발달장애어린이 특수학교 건립이 주민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주민들은 장애인학교가 혐오시설이라며 공사 중인 포크레인을 막고 몸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주무관청인 강남구청과 서울시교육청, 강남경찰서는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었다.
김주영 변호사는 고심 끝에 법원에 '공사방해중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주민들의 물리적 방해에 물리적 힘으로 맞서자는 장애인단체를 설득한 끝에 낸 소송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법원은 열악한 장애어린이의 교육 실태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장애어린이 교육권이 지역주민의 권익에 우선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반대하던 주민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같은 어려움을 겪던 많은 장애인시설이 속속 건립되는 전기가 마련됐다. 김주영 변호사는 소송이 갖는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이 시기에 우리 사회에 누적된 경제·인권·노동·환경 분야의 문제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1997년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을 시작하자 그는 경제개혁센터 부소장을 맡아 소액주주의 권리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혁운동에 동참했다.
당시 우리 기업들은 지배구조와 윤리의식 면에서 많이 낙후되어 있었다. 이사회와 주주총회는 서류상 혹은 형식적으로 열렸고 기업의 의사결정은 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때마침 소액주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인터넷카페가 활성화되면서 김주영 변호사와 참여연대는 소액주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경제정의위원회 위원장과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을 잇따라 맡았다. 그 과정에서 대우전자 소송에 이어 코오롱 TNS 소송, ELS 종가조작 소송 등 30여 개의 집단소송을 주도하며 승소를 이끌어냈다. 이때부터 '개미들의 변호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집단소송에 이겼을 때의 소감을 물었다. "집단소송은 고난과 영광의 과정입니다. 피해자들에게 권리를 찾아준다는 보람도 있지만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계속 법률적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고정비용도 많이 들고 1‧2심에서 승소했더라도 3심에서 뒤집힌 경우, 변호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랜 소송 기간 내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표지 인물로 선정됐다. ⓒ김주영"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4/05/pressian/20250405114657791wxnf.jpg" data-org-width="510" dmcf-mid="uX60LHP3Yr"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4/05/pressian/20250405114657791wxnf.jpg" width="658">

▲ (왼쪽) 김주영 변호사가 2003년 '아시아 스타 25인'에 선정돼 클린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기념액자를 받는 모습. (오른쪽) 김 변호사는 같은 해 <매경이코노미> 표지 인물로 선정됐다. ⓒ김주영



김주영 변호사는 2003년 미국 비즈니스위크에 의해 '아시아 스타 25인'에 선정됐고, 2006년 세계경제포럼 다보스회의에서 '차세대 지도자'에 뽑혔다. 한국 기업의 투명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회사법과 공정거래법·증권법 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법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더 겸손하고 최선을 다해 사회를 변화시키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하고 말했다.

김주영 변호사는 대한변협과 서울변협으로부터 여러 번 대법관 후보로 천거된 후 2018년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의해 최종 3인에 추천되기도 했다. 아버지에 이어 2대가 대법관에 오를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고 위로하자, "최종 선정되진 못했지만 판사 경력이 없는 변호사가 대법관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큰 영광입니다. 세 딸을 두었는데 첫째가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법률가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김주영 변호사는 2006년부터 밀알복지재단 이사로 활동한 데 이어 2017년 푸르메재단 공동대표에 취임해 장애인 권익 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 올해 설립 25주년을 맞는 한누리의 목표를 묻자 "점점 증가하는 기업지배구조 관련 분쟁과 투자자 피해소송에서 좋은 성과를 내서 한국 자본시장에 여전히 만연한 부정부패를 막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영 변호사는 최근 계엄 사태와 관련해 "탄핵 상황을 보면서 많은 분이 우리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무엇보다 진영논리가 점점 더 굳어지고 사법부의 독립이 흔들리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법부와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개미들의 변호사, 배짱기업과 맞장 뜨다> (문학동네 펴냄) 등을 쓴 김 변호사는 조만간 신문 칼럼을 모아 <진영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 부인, 세 딸과 찍은 가족사진. ⓒ김주영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는 CBS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한 뒤 영국에서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푸르메재단을 세웠습니다. 푸르메재단은 시민 1만 명과 넥슨 등 500개 기업과 함께 2016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하고, 2022년 경기도 여주에 푸르메소셜팜을 여는 등 장애어린이의 재활치료와 발달장애 청년의 자립을 위한 사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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