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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림보형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5-04-18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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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전 회장이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한 본지 인터뷰에서 이 회사 주력 제품인 탄소섬유를 보여주며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탄소섬유는 무게는 철의 4분의 1이지만 강도는 10배라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이 전 회장은 사장이던 2011년 일본 도레이 본사를 설득해 경북 구미에 탄소섬유 공장을 유치했다. 도레이가 일본 외 아시아 국가에 짓는 첫 탄소섬유 생산 기지였다. /조인원 기자


1973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입사한 직장에서 이직 한 번 없이 52년간 일했다. 직장 생활 절반인 26년은 대표이사,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였다. 지난 1일 퇴임한 이영관(78) 도레이첨단소재 전 회장(현재 상담역)의 경력
은 그 자체가 기록이다. 1973년 삼성과 일본 도레이가 합작 투자한 제일합섬에 입사한 이후, 회사 이름이 새한(1997년)과 도레이첨단소재(1999년)로 바뀌었을 뿐 사실상 같은 회사였다. 제일합섬이 삼성에서 새한으로 분가됐고, 이후 일본 도레이에 인수됐던 것이다.
반세기 넘는 직장 생활 동안 오일쇼크,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 등 한국 경제의 부침(浮沈)을 불렀던 사건들을 산업 현장 최전선에서 겪었다. 산업 재편 속도가 빨라지며 기업 임원들의 수명이 점점 더 짧아지는 요즘, 재계에서는 “이전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도레이첨단소재 본사에서 만난 이 전 회장은 “50여 년 동안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 이런 ‘월급쟁이’란 말이었다”고 했다. 그를 신명 나게 일하게 한 것은 “월급이 아니라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자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잘할 수 있고, 잘해야 재미가 있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평생 그의 지침은 주인의식이었다.
52년간 소재 회사에 몸담은 그는 “앞으로 또 뭘 해야 할까?” 고민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 몰랐다고 했다. 소재는 전자, 자동차, 의류 등 주요 산업의 기초다. 각 산업의 전망을 읽고 10년 앞서 투자해야 미래의 1
0~20년을 주도할 수 있다. 그의 지난 52년과, 그가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미래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요즘은 내가 뭘 하느냐보다, 얼마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데?
“젊은 사람들이 과거와 다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 직원들보면 돈 얼마 더 준다고 회사를 막 옮기지 않는다. 결국 내가 여기서 성장할 수 있느냐 하는 비전이 핵심이다. 최고경영자는 계속 그걸 고민하는 사람이다. 다만 50년 일하면서 주변을 보니 당장은 다른 곳이 더 좋아 보여도, 한곳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 더 성공하고 안정된 삶을 살더라. 특히 사장, 회장보다 바로 위 상사가 중요하다. 그가 비전이 있고 행복하느냐가 결국 후배들의 회사 생활을 좌우한다.”
-경영자로 있는 동안 무분규 사업장으로 유명했는데 비결은?
“회사가 생각하는 것과 직원들이 바라는 것 사이에는 늘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뢰가 핵심이다. 양방향 소통을 하려고 늘 노력해 왔다. 지금은 직원 숫자가 2500명이 넘어가지만 800명대까지는 사람 이름을 다 외워서 만나면 이름부터 부르려고 노력했다. 또 매달 월례회의에서 현재 사업 추진 상황, 성과, 리스크 등을 모든 직원과 공유한다. 노조도 이 회의에 들어와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라고 한다. 회사 상황을 아니까 그걸 넘는 무리한 요구도 안 한다. 결국 그게 창사 이후 무분규 기록을 이어온 비결 같다.”



이영관(오른쪽) 전 회장이 1985년 제일합섬 재직 당시 비디오테이프 등에 쓰던 폴리에스터 필름 기술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삼성 이병철 창업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 기술상을 받고 있는 모습. /도레이첨단소재


-삼성과 도레이를 모두 경험해보니 어떤 차이가 있던가?
“기업을 키워 사회에 공헌하고, 인재가 핵심이란 것 등은 비슷하다. 다만 도레이는 장인 정신을 더 강조한다. 기업 철학에 ‘깊이 탐구할수록 새로운 것이 나온다’(深は新なり)는 ‘극한 추구’의 자세가 포함돼 있다. 당장 돈이 안 돼도 더 갈고닦아서 뭔가 해보자는 생각이다. 섬유 한 가닥을 만들어도 나노 단위로 조금이라도 더 얇게, 더 튼튼하게 해보려 한다. 소재가 앞서가야 첨단 산업이 개척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도레이가 개발한 소재가 있기에 유니클로 히트텍 등이 나올 수 있었다. 2000년대 초 한국 TV 산업이 브라운관에서 평판 LCD(액정표시장치)로 넘어갈 때도 도레이첨단소재가 삼성·LG와 함께 개발해 공급한 TV용 가공 필름이 있었기에 그 분야가 성장했다.”
-우리 기업들은 왜 일본보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약할까?
“탄소섬유가 지금은 미래 산업 핵심 소재로 꼽히지만, 일본 도레이가 1970년대 초 탄소섬유 생산을 시작해서 이익을 내기까지 30년 넘게 걸렸다. 우리 기업이 30년씩 적자를 무릅쓰고 투자할 수 있을까? 거기다 요즘 임원들을 수시로 바꾸니 그들이 멀리 보고 투자하기가 어렵다. 또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 모두 완제품 수출로 성장해, 소재는 외부에서 사 오면 되지 개발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 기업들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중국이다. 최근 수년간 반도체, 바이오, 헬스, 화학 등 각 분야에서 기술 격차를 확 좁혔다. 나는 골든타임이 길어야 5년 남았다고 본다. 그 시간 안에 체질 개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로봇 등을 투입해 제조업 현장을 자동화하고 AI(인공지능) 기술로 효율화해야 중국 기업들과 겨룰 수 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영향은 어떨 것 같나?
“지금 기업들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외환 위기 등보다 심각해서 기존 산업이 뒤집히고 무너질 상황까진 아니다. 관세 정책 자체도 완전히 검증된 것이 아니라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위기 후 다가올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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