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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빠질 내가 생각하는 어려웠다.무슨 않았다. 남자라고배우 김새론. 김새론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번 화는 필자의 요청으로 고 김새론 배우를 기억하는 회차로 진행합니다.

작은 손으로 얼어붙은 땅을 판다. 할 수 있는 한 깊게, 깊게도 판다. 충분히 우묵해지자 그 안에 들어가 이불을 덮듯 흙으로 몸을 덮는다. 이내, 얼굴까지 파묻어버린다. 하지만 죽기란 살기보다 어려운 것. 이내 “푸-” 숨을 내뱉고 잿빛 하늘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망울이 어스름히 빛난다.
영화 ‘여행자’에서 김새론이 연기한 한 장면이다. 일찍이 아역 생활을 시작한 그녀를 처음 접한 작품은 대개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여행자’에서 자기를 버리고 간 아빠를 기다리는 대출금 연체 고아. 혹은 ‘아저씨’의 원빈이 목숨을 걸고 지켜 준 아이. 반투명한 습자지 같은 얼굴, 초겨울의 서리가 앉은 듯 알 듯 모를 듯한 표정, 가여울 정도로 가느다란 팔다리, 무리와 떨어져 갈 곳 모르는 어린 초식동물 같은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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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론은 스크린에 늘 지켜주고 싶은 대상으로 호출됐 남자은 다. 하지만 클리셰로서 놓이는 인형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여행자’에서 그는 누구보다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가여운 여덟살이지만,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분노에 인형의 머리를 빡빡 자르고 밥상을 뒤엎는다. ‘아저씨’에서는 누구보다 외롭고 또 사랑스러워 옆집 아저씨가 목숨을 바쳐 지켜주는 소녀이지만, 상습적 도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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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 속 김새론. CJ ENM 제공


이어 열 네 살의 그녀를 두 번째 칸 영화제에 데려 간 ‘도희야’. 새끼 기린처럼 껑충 자라난 그녀는 더 이상 순진한 아홉살 아이 따위가 아니었다. 가정폭력 피해청소년으로 분한 김새론은 양면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 의 복합적인 컨텍스트(맥락)를 지닌, 그러나 죽도록 지켜주고 싶은 도희를 훌륭히 연기해냈다. ‘도희야’에서 그녀가 포구에서 팔랑팔랑 춤을 추던, 아무렇지도 않게 빤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던 모습은 참으로 위험하고 또 애틋했다. 데뷔작 ‘여행자’에서 고아원의 담을 오르고 땅을 파던 김새론 말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연기였다.
어린 나이에 고되 개인회생 진술서 고 험한 연기를 온 몸으로 받아 내온 김새론은 때론 ‘만신’ 속 어린 만신이 됐고, ‘맨홀’에 빠진 청각장애인이 됐으며, ‘눈길’에서 위안부로 끌려가 친구와 탈출하다가 죽음을 맞는, 살아남은 이가 한평생 잊지 못하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김새론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원빈의 든든한 전완근으로서, 배두나의 조심스러운 포옹으로서, 어떤 식으로든 그 가여운 것을 구해냈고 안심하며 영화관을 나왔다. 그래서 나는 영화 위안부 피해여성을 그린 ‘눈길’에서 김새론이 연기한 영애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더 많이 울었는지도 모른다.
“죽는 게 무서워? 난 죽지 못해 사는 게 더 무서워.”
결기 있게 말하던 고고한 영애가, 함께 탈출하다 총에 맞자 종분(김향기)에게 위안부 아이들 사진을 손에 쥐어주며 “네가 이 애들 꼭 기억해야 돼? 먼저 가. 내 곧 따라갈게”라 말할 때. 김새론의 영혼엔 대체 어떤 것이 있기에 이토록 죽음과 가까운 호소력 있는 연기를 하는 것인가 생각할 때.



영화 ‘도희야’ 속 김새론. 무비꼴라쥬 제공


아역으로 시작한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김새론에게도 사춘기는 있었다. 성장하며 아역 때만큼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지 못해 헤매는 시기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공력으로라면 그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직 그녀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에 불과했으므로 말이다.
그러나 일이 발생했다. 음주운전을 하다 변압기를 들이 받은 그 사건. 사람들은 그녀가 변압기 피해를 입은 업장들을 한 곳 한 곳 돌아다니며 사과하고 변상을 한 사실엔 관심이 없었다. 대신 모든 작품에서 편집되고 캐스팅이 취소된 그녀가 생활고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있었으며, 이진호를 비롯한 렉카 유튜버들은 ‘동정을 사기 위한 연출’이라는 후진 프레임으로 그녀를 몰아세웠다. 대중은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 배우가 그런 사고를 쳤음을, 마침내 평범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만큼 나락에 갔음에 환호했고, 기어이 숨통을 끊어 놓을 듯 그녀를 ‘패는’ 걸 스포츠처럼 즐겼다.
기나긴 ‘자숙’ 중이던 김새론이 김수현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김새론을 ‘어딘가 좀 이상한 여자’로 모는 프레임은 더욱 극심해졌다. 글쎄, 한때 다정한 사진을 찍을 정도의 사이었던 이와 찍은 사진을, 실수로든 의도가 있었든 올리는 것이 그토록 ‘이상한’ 일인가? 사람들은 김새론을 음주운전을 해놓고 카페에서 일하며 동정을 사려는 여자, 자신에게 관심 없는 남자와의 친밀한 사진을 올려 남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여자, 아무튼간에 좀 유별나고 이상한 여자로 몰아세웠다.
그에게 돌을 던진 이가 남자들뿐이던가. 내 기억으로는 그가 김수현과의 사진을 공개한 후 급속히 악플의 수가 늘었고, 여초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김수현이 불쌍하다는 어떤 종류의 댓글들이 지속적으로 달리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여자들은 왜 ‘자신에게 관심 없는 인기남에게 애정을 구하는 여성’에 대한 프레임을 만들길 저토록 즐길까? 왜 그가 한 남자를 곤란하게 했음에 그토록 지극한 대리 수치심을 느끼며, 그런 여자는 이 세상에 없어야만 하는 것처럼 그를 마땅히 벌하고 응징하고 싶어할까? 여자가 이성 문제에서 분수를 모르거나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재단하고 수치스러워하는, 사회적 억압의 내면화와 투사에 가까워 보이는 그 심리 기제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영화 ‘눈길’ 속 김새론. 앳나인필름·CGV아트하우스 제공


김새론 사망 전 불과 한달 전까지 유튜버 이진호는 김새론에게 전화를 걸며 괴롭혔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 전화해 ‘피해자 코스프레’ 따위의 영상을 시시때때로 올렸다. 그 영상 덕에 잠잠해진 여론은 다시 들끓어 검색량이 8만7천건으로 급격히 반등했다. 렉카들 뿐 아니라 수많은 매체가 김새론의 행동을 유별난 기행처럼 낱낱이 묘사하며 그녀의 불행을 조회수로 뜯어먹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통계에 의하면 그가 음주운전을 한 후 사망 이전까지 5천 건이 넘는 김새론에 대한 비난과 조롱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공격적으로 기사를 발행했던 수많은 매체들엔 그녀의 죽음 이후로는 오직 부고를 알리는 기사 몇 건만이 올라와 있을 뿐이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그러나 실수를 저지른 다음의 인생도 있다. 지금 당장 음주운전을 한 남성 연예인들을 떠올려보라. 한 문단을 뚱뚱하게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그리고 얼마 간의 ‘자숙’ 기간 후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사랑받고 있는 이들의 얼굴이 쉬지 않고 떠오른다. 그런데 왜 그것이 스물 넷 김새론에게는 3년 동안 생업을 잃고, 아역시절부터 쌓아온 커리어를 부정당하고, 마침내 스스로 죽음에 이르러야 할 만큼의 무게로 떨어져야 했던 것일까?
설리가 떠올랐다. 구하라가 떠올랐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다고, 전 남자친구와의 사적인 영상으로 협박을 받았다고, 구설수에 올랐던 많은 여자들이, 그리고 세상을 등진 어린 여자들이.



배우 김새론. 김새론 인스타그램 갈무리


왜 우리는 이번에도 김새론을 지키지 못했나?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우리가 그토록 함함해하고 애틋해하던 그 아이를. ‘아저씨’에서든 ‘도희야’에서든 저 어린 것을 살리고 싶다고 한번쯤은 생각했을 그 아이를. 가상의 이야기에서 원빈과 배두나 같은 상상 속의 멋진 어른들이 위기에 처한 그녀를 살릴 때, 우리는 왜 현실 속 위기에 처한 살아있는 그녀에게 돌을 던진 것인가.
영화 속 모두가 지켜주고 싶어하는 그 아이를, 호소력 짙은 눈망울과 순수의 이면에 불같은 자기 고집을 보여 주고야 마는 그 성미를 질투했다. 그것이 김새론이라는 배우의 저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영면을, 오직 평안을 빈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디렉터가 ＜GQ＞, ＜아레나＞, ＜씨네21＞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은 격주 수요일 낮 12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