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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16일 아돌프 켈러만 박사가 독일 프리드리히슈타트 외곽에 위치한 자신의 집 앞에서 한겨레21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는 한국 관련 이야기를 할 때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중앙 진열대 위엔 서울 인사동에서 산 나무 장승 조각과 제주도에서 구한 돌하르방이 있었다. 그 밑에 한국말로 쓰인 ‘감사패’가 놓여있었다. 2009년 한국 시민단체들로부터 받은 한국 갯벌 보전 공로상이다. 2024년 2월,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프리드리히슈타트 외곽에 있는 아돌프 켈러만 박사의 집을 찾았을 때 봤던 모습이다.
독일의 갯벌 전문가이자 한국 새만 신용카드 모집인 금 간척사업을 막기 위한 소송에 증인으로도 출석했던 켈러만 박사가 2025년 2월2일 별세했다. 향년 72.
켈러만 박사는 독일 킬 크리스티안 알브레히츠 대학교를 나와 미국 하와이에서 유학한 뒤 1992년부터 베를린 연방환경청에서 일했다. 200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넓고 훼손되지 않은 갯벌습지가 있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바덴해(와덴해) 한국장학재단 성적 에서 생태계 연구와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했다. 이후 2016년까지 국제해양탐사협의회(ICES) 과학위원장을 지냈고, 2022년 바덴해 공동사무국(CWSS) 태스크그룹 의장을 맡기도 했다. 공동사무국 의장을 그만둔 뒤에도 프리랜서로 갯벌과 해양 생태계와 관련된 일을 했다.
켈러만 박사가 한국의 갯벌에 관해 처음 알게 컨벌루션 된 건 국내 갯벌 연구의 선구자인 서울대 고철환 명예교수와의 인연 덕분이다. 고 교수와 켈러만 박사는 1970년대 함께 키일 대학을 다니며 해양생물학을 공부했다. 이후 고 교수는 1994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갯벌 국립공원을 찾아 켈러만 박사와 재회했고, 그 인연으로 켈러만 박사가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 “그때 나는 독일이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줄 진행합니다 처음 알았습니다. 그 이후 켈러만 박사는 국내 환경단체와 교류하면서 한국 갯벌을 탐사했고, 독일의 자료들도 제공해 줬습니다.” 고 교수가 말했다.
켈러만 박사가 국내에서 유명해진 건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 과정에서다. 2003년 6월 새만금 간척사업을 막기 위한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해 독일은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고 소 내생애최초주택자금대출 서류 개했다. 당시 행정법원은 방조제 공사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켈러만 박사는 본안 소송 과정에서 한국 법원에 편지까지 보내며 간척사업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본안 소송에서 정부가 잇따라 승소했고 결국 2006년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됐다.
“제가 가진 가장 큰 우려는, 전체 생태계 및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문자 그대로 완전히 말살시킬 수 있는 사업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현재 막혀 있지 않은 구간을 통해 바닷물이 드나들기만 하면, 이곳의 갯벌 생태계는 숨을 쉬고 살 수 있게 됩니다.”(켈러만 박사가 2004년 한국 법원에 보낸 편지 중 일부)
끝내 간척을 막지 못했지만 켈러만 박사의 노력은 한국 갯벌 보전을 위한 씨앗이 됐다. 2009년 해양수산부는 바덴해 3국(독일·네덜란드·덴마크)과 처음으로 갯벌 보전을 위한 상호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그 배경으로 켈러만 박사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그해 고 교수는 6개 시민단체와 함께 한국 갯벌 보전 공로상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켈러만 박사를 한국으로 초청해 공로상과 함께 감사패를 수여했다. 켈러만 박사의 집 중앙에 최근까지 전시되어 있던 그 감사패다.
‘우리나라에 갯벌 보전 국민 의식이 거의 없었던 1990년대 중반부터 독일의 갯벌보전 정책, 과학조사, 모니터링, 대중교육을 소개하여 우리나라 갯벌보전의 기초를 닦게 해 주었으며, 또한 시화호, 화옹호, 새만금 간척의 현장에서 그 모순을 일깨워준 귀하의 지대한 공로에 감사를 드립니다.’(켈러만 박사에게 수여한 감사패)



2009년 10월29일 고철환 교수(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등 6개 시민단체가 아돌프 켈러만 박사(앞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에게 한국 갯벌 보전 공로상과 감사패를 수여했다.


한겨레21은 2024년 창간 30주년을 맞아 강과 바다, 갯벌을 생태적으로 복원하는 ‘재자연화’를 제시하며 켈러만 박사를 인터뷰해 보도했다. 독일에서 만난 켈러만 박사는 20년이 넘게 지났어도 여전히 새만금 간척사업에 관해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늘 미소를 짓던 그가 인상을 찌푸렸던 잠깐의 찰나도 새만금 관련 이야기를 할 때였다. “하나의 큰 비극이에요. 제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서 늘 가슴에 찔립니다. 그때 승리를 했어야 하는데… 지금 와서 과거의 모습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둑을 열어 최소한의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해요.” 2024년 2월, 그에게 새만금은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였다.
자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것이 왜 중요한 지에 관해 켈러만 박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자연이라는 게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데 자연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자연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우리가 자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의 출처가 자연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어요.”
켈러만 박사에게 처음 한국의 갯벌을 소개하고 평생 교류를 이어왔던 고 교수는 켈러만 박사를 “한국 갯벌을 (향한 태도를) 간척에서 보전으로 전환한 주요 공로자”라고 기억했다. 생태지평연구소의 장지영 협동처장은 “평생 갯벌과 바다를 보전하기 위해 헌신한 분”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갯벌을 넘어 한국의 갯벌까지 지키려 싸우고 걱정했던 한 학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2월2일은 ‘세계 습지의 날’이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