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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생추어리 시티'. 두산아트센터 제공


미국 원주민 보호구역(인디언 보호구역)은 명칭처럼 원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원주민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생추어리 시티(Sanctuary City)는 미국 내 미등록 이민자들에게 우호적인 지역을 말한다. 미등록 이민자는 생추어리 시티에서 보호받으며 내일을 도모할 수 있다.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극작가 마티나 마이옥의 '생추어리 시티'는 2 윈도우7 공인인증서 021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공연에 선정된 문제작이다.

미등록 이민자의 삶과 우정
미등록 이민자 청년 B(김의태)와 G(이주영)가 생추어리 시티에서 제도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미등록 이민자로 미국에서 자라온 B와 G는 서로를 의지하며 보호하는 관계다. 의붓아버지가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카드설계사 학교에 문제가 생기면 G는 집을 나와 습관처럼 B의 방으로 찾아든다. B와 G는 이성 간이었지만 좁은 침대를 나눠 쓰며 고단한 시간을 견뎌낸다. 서로 숙제를 보여주고 학교에 결석 전화를 대신 걸어주며 고민을 나누면서 지낸다. 극 초반 동일한 대화를 다양한 톤으로 반복하는 장면을 통해 둘 사이에 비슷한 일상이 누적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박한 일상이 쌓이면서 통신연체취업 B와 G 사이에는 우정이나 사랑으로 이름 붙이기 어려운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유사한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과 미래를 공유할 것 같았지만 G의 어머니가 시민권을 얻게 되면서 둘의 삶은 달라진다. G는 이제 시민으로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장학금을 신청할 수도 있다. 반면 B의 어머니는 미등록 이민자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B 자전거 거치 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대신 태어나 보낸 시간이 더 많은 미국에서 미등록 이민자로 남는 것을 선택한다. G는 혼자 남은 B를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B가 자신처럼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가짜 결혼을 계획한다.



연극 '생추어리 시티'. 두산아트센터 제공

대한민국 스위스
미국 시민권을 얻으려면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B와 G는 처음 만난 시점부터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둘의 관계를 연인 버전으로 재정립하는 시나리오를 쓴다. 이 시나리오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둘이 지내온 긴 시간에 연인 감정을 덧칠한 것이다. 함께 힘든 시간을 견뎌낸 두 사람의 감정은 우정과 사랑을 넘어서는 동지애에 가까울 것이다. 가짜 결혼을 하기 위해 민감한 사항까지 일일이 정하고 암기해야 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는다. 한편 이 과정에서 그동안 둘 사이에 생겼던 좋은 감정들, 우정, 사랑, 동지애 그것을 무엇이라도 부르든 둘 사이의 그 감정이 미묘하게 일렁이는 것을 느낀다. G는 보스턴대에 입학하기 위해 떠나야 하지만 대학 생활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G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B와 함께 생추어리 시티에 머물려고 한다. B의 다정한 위로로 보스턴행 버스에 오를 용기를 얻는다.

이민자 보호 구역은 안전 지대일까, 또 다른 억압일까



연극 '생추어리 시티'. 두산아트센터 제공


여기까지가 1막의 내용이다. 1막은 극적인 굴곡은 없지만 둘의 관계로 잔잔한 감정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이것만으로도 흥미를 자극했지만 전체 극으로 본다면 1막은 화려하게 폭발하는 갈등의 불꽃놀이를 위한 장작을 쌓아 놓는 과정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동지애가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아니면 현실의 장벽에 무너질지 궁금증을 안고 2막을 맞으면, 2막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의 대향연으로 극을 몰아간다. 2막은 이상한 삼각관계 속에서 불꽃 튀는 갈등을 벌이며 사랑과 희생을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폐허가 된다. 2막 전체가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스토리 설명을 하진 않겠다.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미등록 이민자 B에게 생추어리 시티는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물리적 공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고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자유는 또 다른 억압을 발생시킨다. 생추어리 시티에서 B가 안정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G라는 심리적 안정 지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2막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은 G에게 심리적 안정 지역이 되어 주었지만 궁극적으로 미등록 이민자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트럼프 시대 미국 사회는 물론 더 이상 단일 민족의 허구가 통용되지 않는 대한민국도, 이 작품이 던지는 이민자 사회의 질문이 많은 생각거리를 줄 것이다. B역의 김의태는 책임감 있고 선량하지만 늘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영화 '야구소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출연했던 이주영이 복잡한 감정 변화를 겪는 G를 연기한다. 5월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



객원기자